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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에 알고 가면 좋지!!

牛步千里…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by by 서울뚱스 202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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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인월-금계 구간

지리산 둘레길 제3구간에서.지난 2022년에는 한 해 동안 총 105회의 산행을 기록한 데 이어 2023년 계묘년 1월에는 한 달 동안 모두 6차례 산행을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한 달에 보통 8~9차례 산행을 했겠지만 연말·연초에 지독한 독감으로 인해 10여 일 고생하느라 서너 차례 산행을 거른 탓이었다.

다행스럽게 한약이든, 양약이든 어떤 약도 먹지 않고 치료를 받지 않은 채 그저 불편과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선친(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의 '웬만한 질병은 몸으로 때워서 극복하라'라는 자연 의학적 가르침대로 10여 일을 꿋꿋하게 버틴 끝에 병마病魔가 스스로 물러감으로써 '자연 치유'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자연 치유로 독감을 이겨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선친의 뒤를 이어 자연 의학적 지혜를 강조하는 사람으로서, 불편과 고통이 따른다고, 또 누가 보지 않거나 알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의 소신과 철학에 반하는,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아닌, 증상이나 통증의 완화 등을 추구하는 미봉책을 쓰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방식을 택한 것이다.

지난 2월 4일은 절기상 한 해 시작의 기준점으로 보는 입춘立春이어서 그런지 추위가 다소 누그러지고 봄기운이 제법 느껴지는 날씨였다. 이날 아내 우성숙과 나는 서울에서 출발한 한국콜마의 윤동한 회장과 그 임직원 35명을 남원시 인월면 중군 마을에서 만나 수인사를 나눈 뒤 오전 10시 40분쯤 함께 그곳을 출발해 지리산 둘레길 제3구간 산행을 시작했다.

둘레길 제3구간은 원래 인월면 소재지의 출발점에서 시작하지만 논두렁 길과 차도를 따라 걷는 1.5km 남짓 되는 거리를 생략하고 동네를 벗어나 곧이어 숲속 오솔길로 접어드는 명품 산길을 선택해 지리산의 자연 풍광을 십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낫다는 윤 회장의 소신에 따른 산행이었다.

지리산 서북 능선의 끝에 자리한 덕두산 허리를 휘감아 도는 둘레길을 1시간 남짓 걸어서 수성대에 다다르고 백련사로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5분쯤 오르막길을 걸어서 다시 숲속 오솔길로 접어들어 계곡을 건너 산길을 걷는다.

35명의 등산객이 형형색색의 등산복 빛깔을 드러내며 한 줄로 늘어서서 호젓한 산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모습은 지리산의 자연과 조화를 이룬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팔십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모습의 윤 회장은 맨 앞에서 뚜벅뚜벅 걷다가 중간중간 걸음을 멈추고 지명의 유래와 나무의 특성, 산소의 상석에 쓰인 명문銘文을 보면서 그곳에 잠든 이들의 시호와 그 부인들의 가문 내력 등에 대해 임직원들에게 소상하게 설명해 주곤 한다.

한국콜마 세종 공장 문 앞의 큰 바위에 새긴 글, 즉 "뚜벅뚜벅 천천히 걷는 소는 천 리를 간다牛步千里"고 쓴 글의 정신에 따라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소'에게서 교훈을 얻어 머나먼 인생길을 차질 없이 알차게 걸어가자는 윤 회장의 철학적 메시지가 엿보인다.

1시간가량 산길을 걸어 장항마을에 도착해 보호수로 지정된 거대한 소나무 아래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은 뒤 마을에 대기하던 회사 버스로 이동해 상황마을 회관에 도착한 뒤 또다시 길을 걷는다.

지리산 서북 능선 덕두산 허리 길을 지나, 산 고개를 넘고 또 하나의 고개를 넘어 묵묵히 산길을 걷노라니 그 옛날, 머나먼 산길을 걸으며 읊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자 도인道人으로 이름난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선생의 시구詩句가 떠올라 머릿속을 맴돈다.

온종일 짚신 신고 걷는 나그넷길/ 산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푸르러라

무념무상이라 아무런 걸림 없나니/참된 도를 어찌 거짓으로 이루랴?

이슬 내린 아침에 산새들 지저귀고/봄바람에 대지는 꽃으로 미소 짓네

지팡이 휘두르며 산으로 들어가니/짙은 안개 걷히며 푸른 벽 드러나네

終日芒鞋信脚行종일망혜신각행

一山行盡一山靑일산행진일산청

心非有想奚形役심비유상해형역

道本無名豈假成도본무명기가성

宿露未晞山鳥語숙로미희산조어

春風不盡野花明춘풍부진야화명

短筇歸去千峰靜단공귀거천봉정

翠壁亂烟生晩晴취벽난연생만청

선생은 조선 세종 17년(1435)에 태어나 성종 24년(1493)에 60세를 일기로 충남 부여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세연世緣을 마치고 입적했다. 세 살 적에 글을 지어 세상을 놀라게 한 신동神童으로서 다섯 살 되던 해에 당대의 임금 세종대왕 앞에서 시재詩才를 유감없이 발휘해 상으로 비단 수십 필을 받기도 했다.

21세 때인 세조 1년(1455), 세칭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일컬어지는 수양대군首陽大君(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3일간 통곡을 하고 보던 책들을 모두 모아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산사를 떠나 전국 각지를 유랑했다.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혈혈단신으로 전국 각지를 정처 없이 방랑하는 고달픈 여정旅程을 이어가던 어느 봄날, 산 넘고 물 건너 걷고 또 걷다가 선생은 문득 산이 하는 법문에 귀 기울이고 온갖 새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일렁이는 봄바람에 막 꽃으로 피어나 미소 짓는 대지大地의 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선생도 말없이 미소 짓는다. 이 시는 그러한 정경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잘 보여 주고 있다.

삼봉산과 백운산 사이 등구재 아래 등구령 쉼터에서 산나물 비빔밥과 막걸리로 점심을 먹은 뒤 오르막 산길을 따라 걷고 또 걸어서 해발 650여 m 높이의 등구재를 넘어 내리막길을 30분쯤 걸어서 창원마을에 도착했다. 이날 우리 일행은 총 8.5km 거리를 6시간 걸어서 오후 4시 40분 무렵 산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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