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밀란도 김민재(26, 나폴리) 영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나폴리는 6개월 만에 김민재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할 준비를 하고 있다. 김민재는 이적 첫 해 만에 주전 수비수 자리를 차지하며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세리에A뿐 아니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서도 통하는 수비력을 자랑하며 벌써부터 다른 팀들의 영입 리스트에 올랐다.
김민재를 가장 원하고 있는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맨유의 김민재 영입설을 지난 9월부터 전해졌다. 맨유의 에릭 텐 하흐 감독은 수비 보강을 원하고 있고 김민재를 타깃으로 결정했다. 맨유는 김민재의 바이아웃으로 알려진 5,000만 유로(약 700억원)를 지불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맨유를 포함해 토트넘, 레알 등도 김민재와 링크가 나면서 나폴리는 빠르게 김민재 붙잡기에 나서려 한다. 나폴리는 김민재의 바이아웃을 삭제하고 계약 기간을 2027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휴식기 동안 나폴리가 김민재 측과 대화를 나눴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다만 김민재 측은 바이아웃 삭제 제안에 대해 부정적인 상황이다. 나폴리는 조항 삭제가 쉽지 않을 경우 금액을 올리려 한다. 나폴리가 원하는 금액은 7,500만 유로(약 1,010억원)로 현재 바이아웃 보다 2,500만 유로(약 330억원) 향상된 액수다.
나폴리가 재계약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이적설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팀들의 이름까지 등장했다. 이탈리아 ‘투토메르카토웹’은 “유벤투스도 여전히 김민재를 지켜보고 있다. 김민재를 통해 스쿼드를 강화하길 바라고 있다. 유벤투스는 지난여름에도 김민재 영입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영국 ‘풋볼365’는 “맨유가 김민재를 품기 위해서는 유벤투스, 인터밀란과 경쟁을 펼쳐야 한다”며 나폴리로서는 반갑지 않은 팀들의 이름도 언급됐다. 나폴리는 다음 달 5일 오전 4시 45분(한국시간) 밀라노의 쥐세페 메아차 스타디움에서 인터밀란과 2022-23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 16라운드로 리그를 재개한다.
'커피왕국'을 '축구의 나라'로... 펠레, 브라질을 바꿨다
2005년 한 행사에서 축구공에 입맞추는 펠레의 모습(당시 65세). /AFPBBNews=뉴스1브라질은 미국 다음으로 흑인 노예들이 많았던 국가다. 이들은 제국주의 시대에 커피와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브라질로 끌려왔다. 이후 브라질은 '커피의 나라'로 급부상했다.
브라질의 흑인 노예들은 1888년 노예 해방령이 선포된 후 서서히 사회 곳곳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분야는 축구였다. 흑인 노예들의 후손들이 대거 포진한 브라질 축구 대표팀은 1958년과 1962년 월드컵에서 연거푸 우승을 차지했다. 이들은 1970년 브라질에 세 번째 쥘 리메 컵을 안겼다. 커피 농사를 위해 브라질로 강제 이주당했던 노예의 후손은 이처럼 브라질을 커피왕국에서 '축구의 나라'로 바꿔 놓았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펠레(1940~2022)가 있었다. 그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18세의 나이로 브라질의 첫 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끌며 화려한 축구 인생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 그는 브라질에 1962년과 1970년 월드컵 우승을 선사하며 브라질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축구 최강국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그는 명실상부한 '축구 황제'로 등극했다. 월드컵에서 세 차례 우승한 유일한 선수가 됐기 때문이다.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컬러 TV로 전 세계에 경기가 방영된 1970년 월드컵에서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은 아름다운 공격 축구를 선보이며 월드컵의 세계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아프리카 혈통의 선수들이 많았던 브라질 축구는 이때부터 '삼바축구'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그들의 율동적인 드리블이 마치 브라질의 삼바 댄스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1962년 칠레 월드컵 당시 펠레(22세). /AFPBBNews=뉴스1브라질 축구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알린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한 브라질 국가대표 선수들 가운데 펠레를 포함해 무려 6명이 산투스 클럽(브라질) 소속이었다. 산투스 클럽은 브라질 축구의 요람이었던 셈이다. 산투스에서 이같은 빅 클럽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커피 무역 때문이었다. 항구도시 산투스는 영국 회사가 이곳에 철도라인을 놓으면서 세계 최대의 커피 무역항으로 성장해 브라질 경제를 이끌었다. 일자리가 많이 생겨난 산투스에서 브라질 노동자들은 영국인들이 여가시간에 즐겼던 축구에 흥미를 갖게 됐고 이후 브라질 축구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산투스 클럽은 브라질 축구의 대명사였다. 그래서 산투스 클럽은 펠레를 비롯한 축구 선수들의 유명세를 활용해 해외 친선경기로 막대한 돈을 벌어 들였다. 펠레와 산투스는 1972년 한국에 와서도 한 몫을 챙겼다. 한국은 이 초청경기를 위해 1200만 원에 달하는 초청료를 산투스에 지불했다. 축구 팬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이 경기를 중계하기 위한 TV 중계권료도 600만 원에 달했다. 그때 한국에서 쌀 한 가마(80kg)의 가격이 1만 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액수였다.
이런 산투스 클럽의 비즈니스가 가능했던 근본적인 요인은 당시 브라질 축구 선수들의 유럽 이적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펠레도 1960년대 후반부터 유럽 빅 클럽들의 스카우트 제의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브라질 군사독재 정권은 펠레는 물론 축구 스타들의 이적을 허용하지 않았다. 브라질 정권에 펠레와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은 브라질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국보급 문화재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펠레는 1975년에서야 산투스 클럽을 떠날 수 있었다. 그는 미국 프로축구팀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해 3년간 활약했다.
펠레가 1992년 한 회사의 홍보 촬영을 하고 있다(당시 52세). /AFPBBNews=뉴스1축구 선수로 모든 것을 다 이룬 펠레에 대한 찬사는 책 수십 권 분량으로도 모자랄 정도로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 펠레의 삶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늘 그를 괴롭혔던 것은 왜 브라질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지 않았냐는 부분이었다. 브라질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펠레가 정권에 굴종했다는 비판이었다.
2021년 발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펠레'에도 이 대목이 거론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펠레를 비겁한 영웅으로만 보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브라질 군사정권의 폭압적인 정치와 맞서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펠레도 정부에 반기를 들 수 있었겠지만 당시 브라질은 군사정권이 철권을 휘둘렀던 시대라 그의 정치중립적 태도에 무작정 돌을 던지기가 어렵다는 의미였다. 더욱이 펠레는 1970년 브라질 좌파 인사로부터 정치범 석방에 힘을 보태달라는 제의를 받았다는 의혹 때문에 군사정권으로부터 조사를 받았고, 이후 그의 행보에는 제약이 있었다.
브라질 빈민가 소년들의 영원한 영웅이었으며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브라질 흑인 노예 후손들의 우상이었던 펠레는 생전에 "승리하는 데 어려움이 클수록 승리했을 때의 기쁨도 크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축구 경기장에서 그가 이룬 가장 값진 승리는 누가 뭐래도 1970년 월드컵 우승이었다.
하지만 축구장 밖에서 이룩한 가장 행복했던 승리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이제 세상을 떠난 그에게 확인해 볼 길은 없지만 1995년 그가 브라질의 체육부 장관이 됐을 때 부패한 브라질 축구 개혁에 박차를 가했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미완의 성공이기는 했지만 당시 펠레는 오랜 기간 돈과 정치에만 관심을 뒀던 브라질 축구협회를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펠레 시대 이후 '브라질의 최대 수출품은 커피가 아니라 탁월한 개인기를 소유하고 있는 축구 선수'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어쩌면 이 부분이 영원한 '축구 황제' 펠레가 브라질에 안긴 최대 유산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메호대전?···PSG, '호날두팀' 알나스르와 친선전
예상치 못했던 '메호대전'이 성사될 수 있다는 소식에 축구 팬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매체 RTL 스포츠는 31일(한국시간) "PSG는 오는 2023년 1월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알힐랄, 알나스르 등 두 팀의 최고 선수들로 구성된 팀과 친선전을 치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어 "이 친선전은 지난해부터 이미 계획된 것으로 경기 날짜는 아직 미정이다"라고 덧붙였다.
단순한 사우디아라비아 투어와 친선전이었을 이 계획은 최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알 나스르로 합류하면서 전 세계 축구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계약을 해지해 무소속이 된 호날두는 31일 알나스르와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내용에 관해 스페인 매체 마르카는 "호날두는 알나스르와 2년 계약을 체결했으며 연봉은 2억 유로(약 2700억원)에 육박한다"라고 설명했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를 보유하고 있는 PSG가 때 마침 호날두를 영입한 알나스르와 친선전을 벌일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마지막 메호대전이 성사될 가능성이 생겼다.
메시와 호날두 모두 전성기 시절 각각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치열하고 수준 높은 경쟁을 펼쳤고, 국내 팬들은 이를 '메호대전'이라고 불렀다.
당시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축구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는 두 선수가 양분했다. 그 결과 메시가 발롱도르를 7번을 수상했고, 호날두는 5번을 수상했다.
두 선수는 매 시즌 맞대결을 최소 2번 가졌지만 호날두가 유벤투스로 떠나면서 횟수가 줄었고, 지난 2020년 12월에 열렸던 유벤투스와 바르셀로나 간의 2020/21시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6차전 맞대결이 마지막 메호대전이었다.
만일 친선전이 성사된다면 약 2년여 만에 메호대전이 성사되기 때문에, 두 선수가 친선전이지만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다시 한번 메호대전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로 우승 도전' 데샹 감독, 프랑스와 재계약...최대 12년 재임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 대표팀을 이끌면서 월드컵 우승 1회, 유로 준우승과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낸 디디에 데샹 감독이 2년 더 레블뢰 군단을 이끈다.
데샹 감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장이다. 선수 시절 유벤투스와 마르세유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프랑스 대표팀에서는 주장으로 조국의 월드컵 첫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감독으로도 승승장구했다. 모나코, 유벤투스, 마르세유를 거쳐 2012년부터 프랑스 대표팀을 이끌고 있고, 유로 2016 준우승, 2018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2018 월드컵에서 프랑스 대표팀을 이끌고 20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마리우 자갈루, 프란츠 베켄바워에 이어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월드컵에서 우승했던 3번째 감독으로 기록됐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당초에는 카림 벤제마, 폴 포그바, 은골로 캉테 등 핵심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져있었기에 4강 이상의 성적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데샹 감독의 지도력과 킬리안 음바페 등 젊은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비록 아르헨티나에 승부차기 혈투 끝에 패배했지만 프랑스의 저력과 데샹 감독의 지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샹 감독이 무려 10년이나 연임했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고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에 패했기 때문에 감독 교체 여론도 있었지만 번의 월드컵에서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기록한 감독을 경질시키는 것도 이상한 그림이었다. 본래 월드컵이 끝나면 지네딘 지단이 부임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엔 데샹 감독의 재계약설에 힘이 실리면서 2년 재계약이 유력해졌다.
'RMC', '르 파리지앵' 등 프랑스 유력지들은 "데샹 감독이 계약을 연장할 것이다. 데샹 감독은 월드컵 전에 설정한 목표를 달성했고, 적어도 2년은 계약 기간이 지속될 것이다. 이번 재계약으로 데샹 감독은 최대 12년 동안 프랑스 대표팀에 재임하게 됐고, 유로 2024 우승에 도전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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