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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의 일상(2023)

<뚱스의 살며 생각하며>결혼의 조건

by by 서울뚱스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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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삶의 과정 중의 하나다. 따라서 결혼이란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삶의 형식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누구나 결혼을 지극히 새로운 일로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그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누구나 결혼은 처음 하는 일이면서 연습을 해 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결혼을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삶의 형식 중의 하나라고 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누구나 거치게 되는 일인 까닭이다. 그 보편성이 개개인의 체험으로 나타날 때는 새로움이 되는 것이다.

결혼의 일회성은 그 일회성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값진 일이며 보람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탄생이 그러하고 죽음이 그러하듯이 결혼도 단 일회일 뿐인 까닭에 소중하고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탄생과 죽음의 일회성과 결혼의 일회성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탄생과 죽음은 자기 의지, 곧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일인 반면에 결혼은 전적으로 당사자의 선택권이 발휘되는 중대한 인생사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인생은 고비고비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일로 가득하다. 곧 인생의 행복이나 불행은 그 무수한 선택과 결정을 어떻게 했느냐의 축적으로 좌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결혼의 선택과 결정은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생의 출발이면서 바탕이고 귀결점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어느 민족, 어떤 나라에서나 결혼이라는 의식은 호화로우며 신성시하고 축복하며 인생의 중대사로 여기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마침내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의 몫을 해내게 되는 시작이 아닌가. 특이하고 기이한 삶을 살지 않는 한 그 사람이 어떤 능력을 지녔든,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결혼은 인간으로서 거쳐야 하는 가장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인간의 소임을 다하는 행위인 것이다. 결혼을 신성시하고 모두가 축복하는 것은 바로 그 소임에 대한 경건성이고 격려가 아니랴.

그러므로 결혼은 두 남녀의 애정행위만을 위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애정행위를 통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을 건강하게 키우고, 사람답게 가르쳐야 하는 동시에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를 건전하게 운영해야 하는 책임이 두 남녀에게는 평생토록 지워지는 것이 결혼이다. 결혼을 통한 이 무한책임은 인류가 있은 이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인류가 존속하는 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상식적이면서도 중대한 책무를 무난하게 이루어내려 할 때 결혼을 앞둔 남녀에게는 어떤 상대를 골라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당연하고도 심각하게 다가서게 된다.

연습이 허용되지 않고 단 한 번으로 끝나 버리는 결혼이기 때문에 결혼 상대를 구하고 고르는 일은 또 그만큼 중대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혼조건’이라는 말도 생겨나게 된 것이 아닌가.

가장 행복한 부부는 평생을 친구관계로 사는 부부라는 말이 있다. 그건 꽤나 그럴 듯한 말이다. 친구는 우선 신뢰하는 마음이 바탕이 된다. 그리고 격의없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사이다. 또한 인격적으로, 심정적으로 동격을 유지한다.

부부가 우정적 신뢰를 바탕으로 삶의 굽이굽이를 의좋은 정담을 나누면서,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한결같이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부부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결혼생활은 적잖이 실패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 평생을 친구관계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너무 당연해서 너무 진부하게 느껴지는 사실, 사람 됨됨이가 결혼조건의 맨 앞에 놓여야 한다. 결혼은 사람과 사람이 결합하는 것이고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것이고, 사람과 사람이 한 방향을 바라보는 인생 최대의 중대사다.

그러나 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세월이 어느덧 20여년, 그 그릇된 풍조의 결과는 무엇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에서 이혼율 1위를 자랑하게 된 것이다.

그건 세계적 망신이고 국제적 수치다. 자기들의 인생에 얼마나 무책임하고 경솔했으면 이혼으로 세계 1등을 한단 말인가. 그건 우리들의 천민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결혼조건으로 사람보다는 다른 조건들을 앞세운 결과가 그것 아닌가. 우리는 지난 20여년의 세월을 물질을 최고로 받들며 얼마나 천박하게 살아왔는지를 우리들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천박함을 고치려 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OECD 통계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꼴찌’라는 사실이다. 세계 수출 12위의 경제대국 국민이 삶에 만족을 가장 못 느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건 우리들 모두가 너무 탐욕에 사로잡혀 끝없이 더 많이 갖기를 바라며 허둥지둥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배부른 거지’라는 뜻이다.

그것처럼 큰 비극과 불행이 또 있을까. 우리는 이제 1950, 1960년대 가난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니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앞두고 있다. 그럼 조금씩 삶의 여유를 갖고, 사람답게 살려는 모습을 갖춰 가야 한다. 국민소득 5만달러의 꿈을 갖는 건 얼마든지 좋지만, 돈을 쫓아 인간이기를 포기한 채 허겁지겁한다고 그 시대가 빨리 오는 게 아니다. 그럴수록 사회는 황폐해지고, 그 꿈은 멀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결혼이란 사랑의 결실이고 사랑의 결합이다. 이 불변의 사실 앞에서 사회 구성의 기본단위인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봄의 싱그러움  속에서 어김없이 결혼 시즌이 또 돌아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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