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스의 살며 생각하며]‘콩’으로 버거를 만든다
콩과식물 레그헤모글로빈 사용
쇠고기 색 패티로 버거 만들어
대체육서 육즙까지 흘러나오니
진짜 육류와 구분 어려울 정도
채식주의자들에 당연히 인기
생물 중에 신통방통한 것이 있으니, 바로 콩과식물의 뿌리혹에 든 뿌리혹세균(근류세균, 根瘤細菌)이다! 콩과식물의 뿌리혹은 공중에 흐드러지게 널려 있는 유리질소(遊離窒素, free nitrogen)를 고정하는 비료 공장이다. 사람들은 비싼 돈 들여서 뿌리혹세균들의 질소고정을 흉내 내어 화학 비료 공장에서 질소비료를 만들어낸다. 또, 과학자들은 뿌리혹세균들의 ‘질소고정 유전인자(DNA)’를 벼나 밀 따위의 곡식 세포에 집어넣어 질소비료를 주지 않아도 되는 식물을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콩과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는 공생(共生, symbiosis)한다. 그리고 콩과식물에는 땅콩, 콩, 팥, 토끼풀, 아까시나무, 싸리나무, 등나무, 칡들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흔히들 ‘아카시아’로 알고 있는 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는 다른 나무 식물이다. 그래서 ‘동구 밭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에서 ‘아카시아꽃’은 ‘아까시나무꽃’이 맞다. ‘아카시아(acasia)’는 아프리카·호주가 원산(原産)이고, ‘아까시나무(false acasia)’는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둘 다 콩과식물이지만, 다른 종(種)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에서 꿀을 따는 콩과식물은 ‘아까시나무’이고, 아프리카의 기린이 따먹는 날카로운 가시가 많은 나무가 ‘아카시아’이다.
암튼 콩과식물의 뿌리혹세균(박테리아)은 숙주식물(宿主植物)인 콩과식물의 뿌리에 삶터(shelter)를 얻을뿐더러 숙주식물에서 받은 영양분으로 살아간다. 대신 공기 중의 유리질소를 고정(固定, fixation)하여 그것을 콩과식물에 제공한다. 뿌리혹세균과 콩과식물이 주고받는 더불어 사는 모습은 서로 없인 못 사는 금실(琴瑟) 좋은 부부의 모습이렷다!

콩이나 토끼풀을 꽃삽으로 조심스레 뽑아보면, 뿌리에 동글동글한 뿌리혹(근류, 根瘤, root nodule)이 많이 있는데, 그 혹 속에는 현미경으로 보이는 근류세균이 가득 들었다. 콩과식물의 뿌리혹에 든 질소고정세균들은 공기의 78%를 차지하는 유리질소를 암모니아나 암모늄으로 만들고, 또 암모늄을 질산으로 바꾸며, 또다시 질산을 식물에 흡수되는 질산염으로 바꾼다. 이렇게 뿌리혹세균들은 숙주(콩과) 식물의 뿌리에서 고정한, 단백질의 주요 구성 원소인 질소 성분을 콩과식물에 제공하고, 대신 숙주식물에서 탄수화물 등의 영양분을 얻어 쓴다. 그래서 콩과식물과 뿌리혹세균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우주 같은 인연’인 상리공생(相利共生, mutualism)을 한다.
그런데 요새 와서 각광(脚光)을 받는 것이 있으니, 콩과식물의 뿌리혹에 들어 있는 붉은 물질인 레그헤모글로빈(leghemoglobin)이다. ‘leghemoglobin’은 ‘legume(콩)+hemoglobin(헤모글로빈)’의 준말로, 콩헤모글로빈 또는 근류혈색소(根瘤血色素)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뿌리혹을 짜개서 으깨보면 빨간 피 같은 물질이 나오니, 그것이 바로 ‘레그헤모글로빈’이다. 그래서 이 레그헤모글로빈을 음식에 섞어 육류(肉類) 흉내를 낸다고 하니, 그것이 근래 유행을 타고 있는 고기를 대신하는 대체육(代替肉, alternative meat)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헤모글로빈은 적혈구(붉은피톨)에 든 빨간 색소 단백질로, 산소와의 결합력이 매우 강하여 포유동물 혈액에서 산소를 결합해 각 조직(組織)에 옮겨준다. 그리고 식물인데도 불구하고 콩과식물의 뿌리혹에서만은 특별나게 헤모글로빈과 비슷한 레그헤모글로빈 단백질을 만들어서 많은 양의 산소를 붙잡아두고 그것은 질소고정에 쓴다.
덧붙이면, 콩과식물의 뿌리혹세균의 질소고정 효소(니트로게나제, nitrogenase)는 산소(酸素, oxygen) 농도에 무척 예민하여, 산소(O₂)가 넉넉히 있어야 효소의 촉매 기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식물들은 산소를 잎의 기공을 통해 받으며, 심지어 낮에는 광합성을 하여 직접 잎에서 산소를 만들므로 산소가 따로 필요가 없다. 그래서 보통 식물들은 레그헤모글로빈이 전혀 없다. 그런데 콩과식물(뿌리혹)에서만은 식물인데도 특별히 산소가 많이 쓰이므로 레그헤모글로빈을 만든다.
생물들은 산소가 부족하면 산소를 가장 잘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콩과식물이 갖는 레그헤모글로빈은 놀랍게도 산소 결합력이 사람의 헤모글로빈보다 10배나 더 세다고 한다. 그리고 레그헤모글로빈은 동물의 헤모글로빈보다 오히려 근육(힘살) 속에 들어 있는 붉은 미오글로빈(myoglobin, 근혈색소, 筋血色素) 색소 물질을 더 닮았다. 아무튼, 콩의 레그헤모글로빈을 육류의 헤모글로빈을 대신하여 쓰게 되었고, 레그헤모글로빈에서 살아 있는 육즙(肉汁)을 얻어서 고운 색깔, 향기로운 맛, 부드러운 육질과 식감까지 빼닮은 대체육을 만들게 되었다.
거듭 말해서 콩과식물의 뿌리혹에 있는 레그헤모글로빈은 철(Fe)을 함유한 동물의 헤모글로빈(Hb)과 유사한 구조인데(두 물질은 같은 뿌리에서 진화함), 2021년에 맥도날드(McDonald’s)에서는 대두 뿌리혹에서 추출한 레그헤모글로빈으로 쇠고기 색을 낸 패티(patty)를 넣어 ‘임파서블 버거(impossible burg)’를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대체육이 다른 육류처럼 구수하면서 육즙까지 흘러나오니 채식주의자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실제로 레그헤모글로빈을 사용한 대체육은 진짜 육류와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하며, 이렇게 대체육과 여러 곤충 식품이 음식 세계의 새로운 개척자로 자리하기에 이르렀다
[분류 전체보기] - [김형석의 100년 산책] 우리 정치에 미래와 희망이 있는가
[김형석의 100년 산책] 우리 정치에 미래와 희망이 있는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한때 행동과학 계통 사람들의 주장이 많은 영향을 남겼다. 사람은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옛날 그리스 비극작가들은 밖으로부터의 운명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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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스의 글로벌 아이] 비자 발급 중단이 이익인가
한국 정부가 중국행 단기 비자 발급 중단을 2월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자국민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다만 PCR 검사로 예방할 수 있는 상황을 비자 중단이란 강수로 대응한 건 과도한 측면이 있다. 경제적 피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지난달 제한 조치는 충분히 수긍할만했다. 방역 해제 후 중국에선 거짓말처럼 빠르게 코로나가 퍼졌고 불투명한 통계 속 중국 인구의 최대 80%까지 감염됐을 것이란 추측은 체감상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확산만큼이나 줄어드는 속도도 빨랐다. 춘제 때 2차 확산을 우려했지만 이미 대다수가 걸린 탓인지 큰 충격은 없었다. 베이징 거리에선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감소 추세는 입국자 통계에서도 확연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1일 중국발 외국인 입국자 330명 중 3명(0.9%)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31일엔 7명(2.4%), 30일 3명(0.9%), 29일 2명(1.5%)이었다. 지난달 초 103명(31.5%)으로 정점을 찍은 뒤 13일부터 지금까지 한 자릿수다. 정부는 데이터 부족과 춘제 이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양성률이 떨어진 건 고무적이지만 춘제가 끝난 지 얼마 안 돼 섣불리 영향을 판단하기 어렵다. 중국 내 확진자·중환자·치명률 수치를 구체화해줘야 재검토해볼 수 있다.”(정기석 코로나19 특별대응단장)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 왜 PCR 검사로 부족한지, 비자 제한 연장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조치 연장에 중국의 반격은 더 세졌다. 지난 1일부터 한국발 입국자에 대해서만 PCR 검사를 시작했다. 지난달엔 중국 상황의 심각성이라도 내세울 수 있었지만 이달 들어 반박할 말은 더 궁색해졌다. 한덕수 총리의 한발 물러선 듯한 설명에도 힘이 빠졌다. 중국 외교부가 “중·한 양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유감을 표했고 한 총리는 “감내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2월 28일 전이라도 해제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중국 현지 우리 기업들의 여론은 차갑다. 비자 발급 중단으로 필요한 비즈니스 일정은 줄줄이 뒤로 밀리고 코로나 해제로 사업 재개를 기대했던 업체들은 정부가 제한을 풀기만 기다리고 있다. 문호가 열릴 듯하던 중국 콘텐트 시장도 다시 기다려보라는 식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대중 수출은 전년 대비 31.4% 급감했다. 우리가 중국에 맞출 이유는 없다. 철저히 우리 국익만 따지면 된다. 비자 중단은 이익인가 손해인가.
[서울에서의 일상(2023)] - [뜡스의News English] 건강을 망가뜨리는 일상의 습관들
[뜡스의News English] 건강을 망가뜨리는 일상의 습관들
일상의 습관(everyday habit) 중 은밀히 건강을 해치는(secretly ruin your health) 것이 있다. 언뜻 보기엔 아무 잘못 없는 습성(seemingly innocent behavior)이어서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별것 아닌(be not a big d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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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수난
25년 전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시중의 번데기, 골뱅이, 단팥죽, 마늘장아찌 통조림에서 포르말린이 검출됐다고 검찰이 발표했다. 중국·태국에서 수입한 번데기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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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일본은 유럽인을 외교고문으로 썼고 조선은 광대로 부렸다[박종인의 땅의 歷史]
광대가 된 하멜과 사무라이가 된 애덤스, 영국에 있는 17세기 일본갑옷

일본 나가사키현 히라도에는 영국인 사무라이 미우라 안진(三浦按針) 묘가 있다. 미우라 본명은 윌리엄 애덤스다. 423년 전인 1600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리프데호가 난파하며 애덤스는 일본에 정착했다. 에도막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애덤스를 외교 고문으로 고용하고 사무라이 신분도 줬다. 1613년 영국 동인도회사 클로브호가 일본에 와서 통상을 요구하자 애덤스는 막부와 동인도회사를 중재해 히라도에 영국 상관 개설을 도왔다. 클로브호 선장 존 새리스는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로부터 갑옷 2벌을 비롯한 선물을 받아와 잉글랜드 왕 제임스1세에게 헌상했다. 애덤스는 1620년 히라도에서 죽었다. 갑옷도 애덤스 무덤도 모두 교류의 상징이다./히라도=박종인 기자
* 유튜브
https://youtu.be/753sTj-Xt8o
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갑옷과 400년 전 일본 히라도
2023년 1월 11일 영국 총리 리시 수낙(Sunak)과 일본 총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가 영국 런던타워에서 일본 갑옷 하나를 관람했다. 갑옷은 410년 전인 1613년 9월 19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셋째 아들인 에도 막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秀忠)가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에게 준 선물이다. ‘410년 전’이다. 선물을 받아온 사람은 잉글랜드 동인도회사 소속 클로브(Clove) 호 선장 존 새리스(Saris)다. 새리스는 1613년 일본 나가사키 히라도(平戸)에 무역대표부 격인 영국상관을 개설했다.
상관 개설에는 미우라 안진이라는 사무라이의 힘이 컸다. 미우라 안진은 영국인이다. 영국 이름은 윌리엄 애덤스(Adams)다. 이보다 13년 전인 1600년 4월 12일 일본 해안에 난파됐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리프데호 항해사였다. 애덤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외교 고문이 됐다. 사무라이 신분도 받았고 이름도 받았다. 받은 그 이름이 미우라 안진(三浦按針)이다. ‘안진(按針)’은 도선사라는 뜻이다.
영국상관이 설립되고 53년 뒤인 1666년 9월 6일 이번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 8명이 히라도에 상륙했다. 13년 전인 1653년 바타비아(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나가사키로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나 사라진 사람들이다. 행방이 묘연했던 선원들이 무사귀환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훗날 이들 가운데 항해사가 13년 동안 못 받은 임금을 받기 위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렇게 적혀 있다.
‘13년 28일 동안 우리는 광대처럼 춤을 췄고 땔감을 구했고 풀을 벴고 담장을 만들었고 논에 물길을 만들었다.’ 그들이 억류됐던 나라는 조선이었고, 이 보고서 제목은 ‘하멜 표류기’다. 자, 2023년 런던타워에서 영·일 두 나라 총리가 마주한 갑옷과 영국인 사무라이 미우라 안진과 네덜란드인 광대 헨드릭 하멜 이야기.

2023년 1월 11일 영국 런던타워에서 410년 전 에도막부가 영국왕실에 보낸 일본 갑옷을 감상 중인 영일 총리들. 영국총리 리시 수낵은 이 갑옷을 “새 시대 안보와 번영의 상징”이라고 했다./영국총리실 트위터
17세기, 교류의 시대
지난 1월 11일 영국 총리실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은 흥미롭다. 영일 양국 총리가 런던타워에서 일본 갑옷을 감상하는 사진인데 설명이 이렇다. ‘1613년 첫 번째 잉글랜드 통상사절단이 일본에 도착했다. 그들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 선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영국 총리 수낙은 일본 ‘닛케이신문’에 이렇게 기고했다. ‘우리는 미래를 보고 있지만 영일 관계는 과거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400년 전 제임스 1세가 받은 이 갑옷과 교류는 새 시대 영일 관계 중심에 있는 안보와 번영을 상징한다.’(2023년 1월 12일 ‘닛케이 아시아’)
15세기 포르투갈이 문을 연 대항해시대는 ‘평면 지구에 고립돼 있는’ 동과 서를 이어 붙였다. 1543년 극동에 있는 일본에 포르투갈인이 화승총을 전하고 이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 신부, 상인들이 일본에 진입했다. 일본은 1582년 ‘견구소년사절단’이라는 소년 4명을 바티칸으로 보냈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 유럽인이 아시아로 밀려들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이어 네덜란드와 영국이 끼어들었다.
영국인 윌리엄 애덤스의 표류
1567년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개전과 함께 공화국을 선포한 네덜란드는 유럽 각국에 의해 독립이 실질적으로 인정되면서 통상 전쟁에도 뛰어들었다. 1602년 영국에 이어 무역회사인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유럽 각국에 선원 모집 공고를 내걸었다. 그 공고를 보고 런던 빈민가 출신 사내 윌리엄 애덤스가 항해사로 지원했다. 1598년 6월 24일 로테르담을 출항한 선단 5척 가운데 두 척은 스페인 해적에 나포됐고 한 척은 돌아갔다. 한 척은 태평양에서 침몰했다. 애덤스가 탄 리프데호는 태평양을 헤매다 2년이 지난 1600년 4월 12일 일본 동쪽 가마쿠라 해변에 표착했다.(가일스 밀턴, ‘사무라이 윌리엄’, 조성숙 역, 생각의 나무, 2003, p11) 무기 가득한 배에서 피골이 상접한 거렁뱅이 24명이 튀어나왔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음식을 준 뒤 이들을 최고 권력자가 있는 오사카로 보냈다. 권력자 이름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이미 일본에 우글거리고 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신부들은 ‘신학의 화약통’인 네덜란드 신교도들을 보고 경악했다. 예수회 신부들이 이에야스에게 단단하게 일렀다. “일본에 해악을 끼치는 신교도 악마다. 죽여라.” 쇼군은 듣지 않았다. 며칠 애덤스를 감옥에 가뒀지만 곧 석방했다. 이에야스와 애덤스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 지구를 도는 여러 항로와 선박에 대해 한밤중까지 얘기했다. 영국과 전쟁과 평화와 모든 종류의 짐승과 천국에 대해 물었고 개신교도 악마는 소상하게 대답했다. 애덤스는 목숨을 건졌다.
애덤스가 활짝 연 일본의 교류
1603년 도쿠가와가 내전에서 승리했다. 도쿠가와는 쇼군에 취임했다. 에도(江戶·도쿄)에 있는 도쿠가와 막부는 애덤스를 막부 외교 고문에 임명했다. 영국으로 돌려보내달라는 청원은 거부됐다. 대신 애덤스는 미우라 안진이라는 이름과 쇼군 알현권을 가진 상급무사 하타모토 신분과 영지와 농노를 받았다. 가난한 영국 선원이, 말하자면, 귀족이 되었다.
동남아에 식민지를 만든 네덜란드와 영국이 ‘영국인 애덤스가 죽지도 않고 사무라이가 됐다’는 소문을 들었다. 도쿠가와 막부는 미우라 안진을 통해 네덜란드, 영국과 통상하게 됐다. 1604년 애덤스는 이에야스 명으로 80톤짜리 유럽식 선박을 건조했다. 1609년 120톤짜리도 건조해 성공리에 진수시켰다. ‘산 부에나 벤투라(San Buena Ventura)’로 명명된 이 배는 1610년 일본에 난파된 스페인 함대에 임대돼 태평양을 건너 뉴멕시코에 도착했다.(가일스 밀턴, 앞 책, p149) 배에는 이에야스가 고른 일본인 22명이 타고 있었다.
1613년 이에야스가 은퇴하고 아들 히데타다가 쇼군에 올랐다. 그해 센다이번 상급무사 하세쿠라 쓰네나가(支倉常長)가 자체 제작한 500톤짜리 범선 ‘다테마루(伊達丸·스페인명 산 후안 바우티스타)’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다. 하세쿠라 사절단 180명은 도쿠가와 막부의 교역 요청 친서를 휴대했다. 사절단은 멕시코에 이어 스페인과 바티칸까지 방문한 뒤 1620년 귀국했다. 일본과 세계의 ‘교류(交流)’. 영국인 사무라이 미우라 안진에게 무역과 조선 자문을 맡긴 결과였다.

런던타워에 소장된 도쿠가와 히데타다 갑옷. /영국왕실컬렉션
히데타다의 갑옷과 불쌍한 하멜
1611년 4월 18일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클로브호가 런던을 떠났다. 배에는 아시아 제국 군주에게 보낼 국왕 제임스 1세의 통상 요청서와 선물이 실려 있었다. 일본 국왕에게 줄 선물은 망원경이었다. 1612년 10월 바타비아 반탐에 도착했을 때 선장 새리스는 ‘일본에 영국인이 산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영국인이 반탐 지역으로 보낸 편지에는 “내가 잘 산다, 영향력이 있다, 일본은 자원이 무궁무진하다” 따위 내용이 가득했다. 그리고 해를 넘긴 1613년 6월 10일 클로브호가 나가사키 히라도섬에 나타났다. 7월 어느 날 소문만 무성하던 영국인 사무라이 애덤스가 히라도에 나타났다.
9월 8일 애덤스 안내를 받으며 이들은 에도 부근 시즈오카에서 은퇴한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났다. 이에야스 보좌관이 바로 애덤스였다. 그리고 9월 17일 새리스는 에도에서 쇼군 히데타다를 만났다. 새리스는 쇼군에게 망원경과 제임스 1세 통상 요청서를 바쳤다. 9월 19일 저녁 히데타다가 제임스 1세에게 보내는 답서와 갑옷 두 벌과 장검(長劍) 한 자루를 답례품으로 새리스 숙소로 보내왔다.(J. Saris, ‘The voyage of Captain John Saris to Japan, 1613′, the Hakluyt Society, London, 1900, pp. 129~134 ) 이에야스가 애덤스에게 “이제 클로브호를 타고 귀향해도 좋다”고 했지만 ‘일본인 미우라 안진’은 고민 끝에 일본 잔류를 택했다. 애덤스는 막부를 떠나 영국 동인도회사 직원으로 히라도 영국상관 개설에 참여했다. 런던 빈민가 사내 윌리엄 애덤스는 영향력과 재력이 있는 사무라이 미우라 안진으로 1620년 히라도에서 죽었다. 무덤도 히라도에 있다. 함께 일본에 정착한 동료 얀 요스텐(Jan Joosten)은 1609년 히라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관을 개설했다. 네덜란드 상관은 1641년 나가사키 인공섬 데지마(出島)로 상관을 옮겼다. 데지마는 이후 일본 근대화의 근원지가 됐다. 얀 요스텐은 1623년 네덜란드로 복귀하기 위해 바타비아로 떠났다가 입항이 거부되자 일본 귀환 도중 익사했다.
임무를 완수한 새리스는 일본을 떠나 이듬해 9월 런던에서 제임스 1세에게 임무 완수를 보고하고 갑옷 2벌을 헌상했다. 그 갑옷을 한 달 전인 21세기 1월 영국과 일본 총리가 나란히 서서 구경했다. 저 두 리더가 갑옷 앞에 서기까지 미우라 안진, 윌리엄 애덤스 발자국이 찍혀 있다. 그 발자국을 따라서 근대화의 길목에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같은 일본 메이지유신 지사들은 바로 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근대를 목격했다. 교류가 가진 힘이 이렇게 묵직하고 강하다.

전남 강진 병영마을 돌담. 13년 동안 조선에 억류됐던 하멜 일행이 전수한 돌 쌓기 방식이라고 전한다./박종인 기자
짤막하게 우리네 하멜 사연을 들어본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스페르베르’호 항해사인 하멜은 1653년 8월 16일 조선 제주도에 표착했다. 13년 먼저 표착했던 벨테브레이 박연에게서 하멜은 “이 나라는 한번 들어오면 죽을 때까지 못 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하멜을 비롯한 생존자 8명은 양반집에 불려가 광대춤을 추고 땔감을 줍고 잡초를 베고 무너진 담장을 수선하고 논에 댈 물길을 만들면서 이를 갈았다. 그러다 1666년 9월 4일 전남 여수에서 미리 사둔 어선을 타고 탈출했다. 이틀 만인 9월 6일, 조선 억류 13년 28일 만에 뭍이 보여서 상륙해 보니 그게 66년 전 애덤스가, 53년 전 새리스가 상륙했던 그 히라도가 아닌가.(헨드릭 하멜, ‘하멜 표류기’, 김태진 역, 서해문집, 2003, p76)조선 정부는 그 13년 동안 이들을 외교 고문으로 고용하기는커녕 중국 사신에게 들킬까 봐 전남 강진, 여수 등지로 쫓아 은폐하고 망각해 버렸다. 하멜이 불쌍하고 조선이 불쌍하고 대한민국이 기적이다. 무엇이 기적을 만들었는가. 간단하다. 교류가 힘이고 내공이다.
조국 전 장관 징역 2년 실형…공직자·정치인 반면교사로 삼길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조국 전 장관
자녀 입시비리와 감찰 무마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녀 입시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를 받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3일 업무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장관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600만 원을 선고했다. 2019년 12월 말 기소된 지 3년여 만이다. 다만 재판부는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법정 구속을 하지는 않았다. 2, 3심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점과 함께 부부를 동시에 구속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자녀 입시비리 범행은 대학교수의 지위를 이용한 것으로 동기와 죄질이 불량하고 입시제도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해 죄책도 무겁다"고 질타했다. 아들 입시비리의 공범으로 기소된 조 전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게는 징역 1년이 추가됐다. 정 전 교수는 지난해 1월 딸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관련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의 확정판결을 받은 바 있다. 또 노환중 부산의료원장은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감찰 무마 혐의로 기소된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무죄를 주장하는 조 전 장관과 징역 5년을 구형한 검찰 모두 항소할 방침이라고 한다.
검찰이 조 전 장관을 기소하면서 열거한 죄목은 뇌물수수, 위조공문서행사, 허위작성공문서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청탁금지법 위반, 공직자윤리법 위반, 증거위조교사, 증거은닉교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무려 12건이다. 재판이 이례적으로 3년 넘겨 진행된 배경이다. 재판부는 입시비리와 관련해 대부분 유죄를 인정했고,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을 무마한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노 원장으로부터 딸 장학금 명목으로 600만 원을 수수한 것과 관련해서는 뇌물은 아니지만,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뇌물수수, 증거위조교사, 증거은닉교사, 공직자윤리법 위반, 사문서위조 및 행사 등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조 전 장관은 판결 후 "혐의 8∼9건이 무죄 판결이 난 데 대해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잘 알려진 것처럼 조국 일가의 불공정 의혹은 공정을 강조한 전임 문재인 정부에 치명타였다. 그 사이 조국 수사로 권력에 맞섰던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됐다. 조 전 장관은 그동안 "검찰이 저를 최종 목표로 전방위적 저인망 수사를 했다"며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했으나 법원의 판결이 나온 만큼 반성과 자숙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사법 절차는 점차 마무리되고 있지만 소위 '조국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3년 전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주말마다 '조국 수호'와 '조국 구속'을 외치며 대규모 집회를 벌였던 양 진영의 갈등과 상처는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않았고, 상대에 불신은 오히려 더욱 커진 듯하다. 이 사건이 문재인 정부 당시 권력 핵심 세력의 '내로남불'인지, 아니면 개혁을 막기 위한 검찰의 '선택적 정의'였는지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어쩌면 두 주장 모두 부분적 진실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법원이 조 전 장관 부부의 현행법 위반 사실을 명백히 인정했다는 점이다.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탱하기 위해 진영을 떠나 모든 국민이 보여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다. 조 전 장관도 이번 판결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정 전 교수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 그리고 조 전 장관에 대한 1심 판결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교훈은 넓고도 깊다. 공직자와 정치인들은 국정농단 사건과 조국 사태를 계기로 높아진 국민들의 눈높이에 걸맞은 처신을 하고 있는지, 관행이나 인지상정을 핑계로 지금 또 이 순간 다른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길 바란다.